페루 남부의 거대한 사막을 내려다보면 이상한 장면이 펼쳐집니다.
벌새와 원숭이, 거미처럼 보이는 거대한 형상이 있고, 수 킬로미터에 걸쳐 뻗은 직선과 삼각형, 사다리꼴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이곳을 바라보며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아주 흥미로운 함정이 있습니다.
우리는 나스카 지상화를 대부분 하늘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이 고대인들이 지상화를 만든 방식이나 목적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나스카 사람들은 정말 하늘에서 보이는 거대한 그림을 만들었던 것일까요?
오늘날 우리는 비행기와 위성사진을 통해 나스카 지상화(Nazca Lines)의 전체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저 거대한 그림을 만든 사람들은 어떻게 전체 모습을 확인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하지만 약 2,000년 전 이곳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나스카 사막은 지금 우리가 보는 것과 전혀 다른 공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한 장의 그림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걷고 이동하고 모이며 경험하는 거대한 문화적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고고학 연구는 이 관점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AI를 이용한 새로운 조사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수백 개의 지상화가 발견되면서, 나스카 지상화를 하나의 목적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습니다.
01. 사막 위에 남겨진 거대한 흔적
나스카 지상화는 페루 남부의 건조한 해안 사막과 주변 지역에 분포합니다. UNESCO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나스카와 팔파의 지상화 지역은 약 450㎢에 이르며, 고대 사회가 광대한 사막의 지표면 자체를 하나의 문화적 공간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지상화의 형태도 매우 다양합니다. 벌새나 원숭이처럼 보이는 동물, 식물과 인간형 존재, 기하학적 도형이 있는가 하면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직선과 사다리꼴, 삼각형, 나선형 구조도 발견됩니다.
UNESCO는 나스카와 팔파 지역의 지상화가 대체로 기원전 500년부터 기원후 5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설명하며, 일부 유적은 그보다 앞선 시기의 전통과도 연결됩니다.
나스카 지상화의 핵심
• 위치: 페루 남부의 건조한 해안 사막
• 주요 형성 시기: 대략 기원전 500년~기원후 500년
• 형태: 동물·식물·인간형 형상, 직선, 사다리꼴, 삼각형, 나선 등
• 특징: 광대한 사막 지형 자체를 상징적·사회적 공간으로 활용
그렇다면 이런 거대한 흔적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방법은 의외로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나스카 지역의 사막 표면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두운 색을 띠게 된 자갈층이 깔려 있습니다. 이 자갈을 일정한 형태로 치우면 아래에 있는 밝은 지표면이 드러나면서 주변과 뚜렷한 색 대비가 만들어집니다.
즉 나스카 사람들이 거대한 그림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특별한 재료나 첨단 기술을 사용했던 것은 아닙니다. 이미 그곳에 있던 사막의 표면을 선택적으로 걷어내는 것만으로도 수백 미터 규모의 형상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02. 그런데 왜 이렇게 크게 만들었을까?
여기에서 나스카 지상화의 가장 오래된 수수께끼가 시작됩니다.
우리가 지금 보는 벌새나 원숭이 같은 형상은 지상에서 전체 모습을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고대 나스카 사람들은 어떻게 하늘에서 이 그림을 볼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는 중요한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나스카 지상화가 반드시 하늘에서 전체 모습을 감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증거가 있는가?
현재의 고고학 자료만으로는 그렇게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나스카 유적에는 동물이나 식물처럼 표현된 지상화뿐 아니라 직선, 사다리꼴, 넓은 공간, 그리고 사람들이 이동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함께 존재합니다. UNESCO 역시 일부 ‘tracks’가 많은 사람들이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나스카 지상화를 이해하려면 ‘그림을 보는 사람’의 시점만 생각해서는 부족합니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그 그림 안으로 들어가 직접 걷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03. 나스카 사람들은 선 위를 걸었을까?
나스카 지상화의 선과 도형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하나의 거대한 그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지상에서 바라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어떤 선은 멀리 이어지고, 어떤 선은 넓은 사다리꼴 공간과 연결되며, 또 다른 흔적은 사람들이 오가던 길과 가까이 놓여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고고학 연구에서는 나스카 지상화가 단순한 시각적 이미지가 아니라 사람의 이동과 의례가 결합된 공간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해 왔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걷는다’는 행위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림을 보기 위해 그림 앞에 서지만, 고대의 의례 공간에서는 이동 자체가 의식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특정한 길을 따라 걸으며 어떤 장소에 도착하고, 여러 사람이 같은 공간에 모이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의례적 경험이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관점의 변화
나스카 지상화를 반드시 “하늘에서 보는 그림”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대인에게 이곳은 걷고, 이동하고, 모이고, 의식을 수행하는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관점은 2024년 발표된 대규모 AI 연구와도 흥미롭게 연결됩니다.
연구팀은 나스카 지역의 항공·위성 자료를 AI로 분석한 뒤 현장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약 6개월의 현장조사에서 303개의 새로운 비유형 지상화가 확인됐습니다.
그런데 연구의 중요한 결과는 단순히 새로운 지상화의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새롭게 확보된 자료를 기존 지상화와 함께 분석하면서, 서로 다른 유형의 지상화가 서로 다른 이동 경로와 공간 구조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났습니다.
04. AI가 찾아낸 303개의 새로운 지상화
나스카 연구에서 최근 가장 흥미로운 변화 가운데 하나는 인공지능이 등장했다는 사실입니다.
2024년 PNAS에 발표된 연구에서 야마가타대학교와 IBM Research 등이 참여한 연구팀은 AI를 이용해 나스카 지역의 원격탐사 자료를 분석했습니다. AI가 찾아낸 후보를 연구자들이 다시 현장에서 확인하는 방식으로 조사가 진행됐습니다.
그 결과 약 6개월의 현장조사 과정에서 303개의 새로운 비유형 지상화가 확인됐습니다. 연구 논문에서는 당시까지 알려져 있던 430개의 비유형 지상화에 더해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면서 전체 숫자가 크게 늘었다고 설명합니다.
2024년 AI 기반 나스카 조사
• 기존에 알려진 비유형 지상화: 430개
• 새롭게 확인된 비유형 지상화: 303개
• 조사 방법: AI 기반 원격탐사 후보 탐색 + 현장 검증
• 추가 발견: 새로운 기하학적 지상화 42개
• 핵심 의미: 지상화의 유형에 따라 기능이 달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료 확대
여기서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지상화가 어디에 있었는가입니다.
연구팀은 기존 자료와 새롭게 발견된 지상화를 비교하면서 큰 선형 지상화와 작은 부조형 지상화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큰 선형 지상화는 야생동물을 주로 표현했고, 직선과 사다리꼴로 구성된 보다 정교한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이러한 구조가 공동체 규모의 의례 활동과 관련됐을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반면 작은 부조형 지상화에서는 인간형 형상이나 가축화된 낙타과 동물, 사람과 관련된 소재가 많이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고대의 구불구불한 이동로 가까이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연구팀은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이 이동하면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제안했습니다.
즉 새로운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AI가 미스터리를 풀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스카 지상화가 처음부터 하나의 목적을 가진 단일한 작품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 더 중요합니다.
05. 그렇다면 물을 기원하기 위해 만든 것일까?
나스카 지상화를 이해할 때 자주 등장하는 또 하나의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물입니다.
나스카 지역은 매우 건조한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물은 단순한 자연환경이 아니라 농업과 식량, 정착 생활을 좌우하는 생존의 문제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 연구자들은 나스카 지상화와 물, 산, 농업의 풍요를 둘러싼 종교적 관념 사이에 관계가 있었을 가능성을 제시해 왔습니다.
고고학자 Johan Reinhard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나스카의 지형과 의례, 산과 물의 관계를 함께 살펴보며 지상화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자연과 신성한 세계를 연결하던 방식과 관련됐을 가능성을 연구했습니다.
또 Anthony Aveni는 나스카 선들이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졌으며, 일부 선이 사람들이 이동하는 경로로 사용되었을 가능성과 물의 흐름, 농업 및 의례적 활동 사이의 관계를 검토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도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나스카 지상화는 물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라고 모든 지상화에 적용할 수 있는 단일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거대한 선과 의례적 이동이 그들의 세계관과 연결되었을 가능성은 없었을까요?
이 질문은 나스카 지상화를 단순히 그림의 형태로만 보는 것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사막이라는 환경과 사람들이 그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낸 종교와 사회 구조를 함께 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06. 한때는 ‘천문 달력’이라고 생각했다
나스카 지상화를 둘러싼 또 하나의 유명한 해석은 천문학입니다.
20세기 연구자 Paul Kosok과 Maria Reiche는 나스카의 선과 천체의 움직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연구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나스카 지상화를 거대한 천문 달력이나 천문 관측과 연결하는 대중적인 이미지가 형성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연구에서는 이 해석을 나스카 지상화 전체의 목적으로 확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일부 선이 특정 천문 현상과 방향이 맞는다는 사실만으로 전체 지상화가 천문 관측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천문학적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UNESCO 역시 나스카 지상화가 의례와 천문학적 기능을 가졌을 가능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천문학이 일부 지상화의 의미를 설명하는 요소일 수 있지만, 모든 지상화를 하나의 천문 달력으로 설명하기에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더 신중합니다.
나스카 지상화를 설명하는 주요 관점
천문학적 해석
태양이나 별의 움직임, 계절 변화와 관련된 표시 또는 의례적 천문 기능이라는 가설
의례적 해석
신성한 장소와 공간을 연결하거나 사람들이 이동하는 의례 공간이라는 가설
물·농업 관련 해석
물과 농업의 풍요를 둘러싼 종교적 의례와 관련됐다는 해석
사회적 해석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의례와 사회적 결속을 위한 공간이었다는 관점
이 네 가지 관점은 반드시 서로 배타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고대의 하나의 공간이 종교적 의미를 가지면서 동시에 계절이나 자연환경과 연결되고, 사람들이 함께 이동하는 사회적 장소로 사용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07. 지상화의 목적은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졌을까?
여기에서 나스카 지상화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시각이 등장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지상화가 같은 목적을 가졌다고 가정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나스카와 팔파 지역의 지상화는 한 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러 시대에 걸쳐 서로 다른 유형의 지상화가 만들어졌고, 일부에서는 선과 형상이 겹쳐지는 흔적도 확인됩니다.
이는 이 사막이 한 세대의 거대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여러 세대가 반복해서 사용하고 의미를 더해 간 공간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특정한 상징을 남기는 행위였을 수도 있고, 이후에는 사람들이 모이는 의례 공간으로 활용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선은 특정 장소로 이동하기 위한 경로였고, 다른 지상화는 이동 중에 바라보는 상징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스카 지상화의 목적’을 하나의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지상화마다 기능이 달랐을 수 있고, 시대에 따라 의미가 변했을 수 있으며, 개인과 소규모 집단, 공동체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08. 그렇다면 외계인이 만든 것은 아닐까?
나스카 지상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외계인입니다.
거대한 그림이 사막에 남아 있고 오늘날에는 하늘에서 내려다보아야 전체 형태가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고대인이 외계인의 도움을 받았거나 하늘에서 온 존재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지상화를 만들었다는 주장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증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실제 유적을 조사한 결과는 고대 사람들이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던 기술과 노동으로 지상화를 만들 수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사막 표면의 어두운 자갈을 걷어내 밝은 지표면을 드러내는 방식은 복잡한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직선과 기하학적 도형 역시 말뚝이나 줄 같은 단순한 도구를 이용해 지상에서 계획하고 확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스카 지상화에서 나타나는 동물과 인간 관련 모티프는 당시 안데스 지역의 다른 예술과 문화적 맥락 속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나스카 지상화가 놀라운 이유는
외계인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고대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술과 사회적 조직만으로 거대한 사막을 문화적 공간으로 바꾸었다는 데 있습니다.
09. 그런데 정말 하늘에서 보여주려고 만든 것이 아니었다면?
여기에서 처음의 질문을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처음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고대 나스카 사람들은 어떻게 하늘에서 거대한 그림을 볼 수 있었을까?”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자료를 따라가면 질문을 조금 바꾸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집니다.
“그들은 애초에 하늘에서 보기 위해 만들었던 것일까?”
두 질문은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릅니다.
만약 지상화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가 사람들이 직접 이동하고, 특정 장소에 모이고, 의례를 수행하는 것이었다면 하늘에서 전체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더 이상 모순이 아닙니다.
오히려 거대한 크기 자체가 의례적 경험의 일부였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는 것과 수백 명의 사람들이 광대한 공간을 함께 걸으며 특정한 장소로 이동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특히 흥미롭게 느끼는 것은 ‘보는 사람’의 위치가 바뀐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나스카 지상화를 볼 때 거의 항상 하늘에서 내려다본 화면을 먼저 접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것을 하나의 완성된 그림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곳에 살았던 사람의 눈높이로 돌아가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발밑에는 밝은 지면과 어두운 자갈이 있고, 눈앞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선이 있으며, 멀리에는 산과 사막이 있었을 것입니다. 누군가 그 선을 따라 걷고 있었다면 그는 우리가 보는 ‘벌새 전체’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경험이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목적이 그림의 완성된 형태를 보는 데 있지 않았다면, 걷는 행위와 목적지, 함께 이동하는 사람들, 주변의 자연환경 자체가 의례의 일부였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직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해석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지점에서 나스카 지상화는 단순한 고대 미술 작품을 넘어, 고대인이 공간을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고고학적 자료가 됩니다.
10.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
그렇다고 해서 나스카 지상화의 비밀이 모두 풀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새로운 연구가 진행될수록 “목적”이라는 질문을 더 세분화해야 한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아직 확실하게 답하지 못한 질문들
- 왜 특정 동물과 인간형 형상이 선택되었을까요?
- 각각의 동물과 도형은 어떤 신앙이나 상징을 의미했을까요?
- 누가 어떤 지상화를 만들도록 결정했을까요?
- 지상화 제작에는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했을까요?
- 각각의 선과 사다리꼴 공간은 어떤 의례에서 사용되었을까요?
- 천문학적 기능은 일부 지상화에서 어느 정도까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
- 물과 농업에 대한 관념은 어떤 지상화와 직접 연결될까요?
-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지상화는 얼마나 더 남아 있을까요?
그리고 가장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남습니다.
그 거대한 공간을 실제로 걸었던 사람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경험했을까요?
11. AI는 오래된 미스터리를 어떻게 다시 읽고 있을까?
나스카 지상화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고대의 미스터리와 현대 기술이 한 장소에서 만난다는 데 있습니다.
2024년 연구에서 AI는 사람을 대신해 지상화를 최종 판정한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항공·위성 등 원격탐사 자료에서 사람이 놓치기 쉬운 후보를 찾아냈고, 연구자들은 그 후보를 다시 검토한 뒤 현장으로 나가 실제 지상화를 확인했습니다.
즉 AI가 발견하고 고고학자가 검증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연구팀은 303개의 새로운 비유형 지상화를 현장에서 확인했으며, 별도로 42개의 새로운 기하학적 지상화도 기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AI가 제시한 후보뿐 아니라 현장 조사 과정에서 추가로 발견된 지상화도 포함됐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변화입니다.
과거에는 연구자가 직접 항공사진을 보고 의심스러운 흔적을 찾아야 했다면, 이제는 머신러닝을 이용해 광대한 사막에서 사람이 우선적으로 조사해야 할 위치를 빠르게 좁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연구 논문에서는 추가로 조사할 가치가 있는 AI 후보들도 남아 있다고 설명합니다.
12. 거대한 그림이 아니라 거대한 의식이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나스카 지상화를 ‘그림’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고대 나스카 사람들에게 그것이 정말 그림이었을까요?
어쩌면 그곳은 사람들이 걷고, 이동하고, 모이고, 의식을 수행하는 공간이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지상화는 멀리서 바라보는 상징이었고, 어떤 선은 사람들이 실제로 이동하는 경로였으며, 또 다른 공간은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의례와 연결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바라보면 나스카 지상화의 거대한 규모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왜 그렇게 거대해야 했을까요?
어쩌면 답은 “멀리서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직접 그 공간 안에 들어가 움직여야 한다면, 넓은 공간과 긴 선은 단순한 크기가 아니라 경험을 만드는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고, 같은 장소에 모이고, 같은 자연환경을 바라보는 과정 자체가 공동체의 의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 역시 모든 나스카 지상화에 적용할 수 있는 확정된 설명은 아닙니다. 오히려 최근 연구는 서로 다른 유형의 지상화가 서로 다른 기능을 가졌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나스카 지상화를 하나의 거대한 그림이라고 부르기보다, 여러 세대가 사막에 남겨놓은 거대한 문화적 기록이라고 보는 편이 더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하늘에서 내려다본 나스카 지상화는 너무나 완벽해 보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림”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실제로 살았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들은 비행기에서 자신의 작품을 내려다본 것이 아니라, 사막을 걸으며 선을 따라 이동했을 것입니다. 어떤 장소에 도착하고, 사람들과 만나고, 의례를 수행하고, 주변의 산과 물과 사막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날 아름다운 거대 그림으로 보는 것은 사실 그들에게는 하나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공간이었을까요?
그리고 그 공간의 의미가 수백 년 동안 조금씩 달라졌다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나스카 지상화는 한 시대의 메시지가 아니라 여러 세대가 이어서 남긴 흔적일지도 모릅니다.
13. 아직 끝나지 않은 나스카의 질문
나스카 지상화의 목적에 대해 현재 가장 조심스러운 결론은 정확한 하나의 목적을 확정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연구가 쌓이면서 몇 가지 방향은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 일부 지상화는 의례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일부 선과 공간은 사람들이 실제로 이동하거나 걸었던 활동과 연결됩니다.
- 물과 농업, 자연환경에 대한 종교적 관념이 중요한 문화적 배경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거대한 선형 지상화와 작은 부조형 지상화는 서로 다른 기능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천문학적 요소가 일부 지상화의 의미에 포함됐을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전체를 하나의 천문 달력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 수백 년에 걸쳐 지상화의 기능과 의미가 변화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AI와 원격탐사 기술을 이용하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지상화를 추가로 발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스카 지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처음과 조금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하늘에서 보았을까?”라고 물었습니다.
이제는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에서 보는 모습이 정말 그들이 남기고 싶었던 모습이었을까?”
어쩌면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은 새로운 지상화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미 발견된 지상화의 의미를 해석하는 방식 자체가 앞으로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하늘에서 보면 하나의 거대한 그림이지만,
땅에서 보면 수많은 선과 발자국, 이동과 의례의 흔적일지도 모릅니다.
나스카 지상화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미스터리는 “누가 만들었는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더 흥미로운 질문은 이것일 것입니다.
그들은 왜 자신들의 세계를
이토록 거대한 땅 위에 남겨야 했을까요?
그리고 앞으로 AI와 새로운 고고학 기술이 사막에 남아 있는 흔적을 더 많이 찾아낸다면, 우리는 나스카 사람들이 바라보았던 세계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요?
참고자료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 Lines and Geoglyphs of Nasca and Palpa
Sakai, M. et al. — AI-accelerated Nazca survey nearly doubles the number of known figurative geoglyphs and sheds light on their purpose, PNAS, 2024
Aveni, A. F. — Order in the Nazca Lines
Reinhard, J. — The Nazca Lines: A New Perspective on Their Origin and Meaning
Smarthistory — Nasca Geoglyp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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